1 살인의 전설
영화 '살인의 추억'은 1986년 경기도 화성에서 발생한 실제 연쇄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젊은 여성이 강간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2개월 후 비슷한 수법의 살인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자 마을은 연쇄살인이라는 생소한 범죄의 공포에 휩싸인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되고, 구희봉 반장을 필두로 지역 토박이 형사 박두만(송강호)과 조용구(김뢰하), 그리고 서울에서 자원해 온 서태윤(김상경)이 수사를 맡는다.
육감파 형사 박두만은 동네 양아치들을 족치며 자백을 강요하는 구시대적 수사 방식을 고수하고, 서태윤은 꼼꼼한 서류 검토와 과학적 수사 기법으로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려 한다.
수사팀은 정신지체 장애인 백광호를 첫 용의자로 지목하지만, 현장 검증 과정에서 그가 범인이 아님이 밝혀집니다. 이어서 서태윤은 비가 오는 날 빨간 옷을 입은 여성을 노리는 범행 패턴을 발견하고, 공장 직원 박현규를 새로운 용의자로 지목한다.
수사본부는 마지막 희망으로 미국에 유전자 감식을 의뢰하지만, 결과는 박현규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결국 사건은 미제로 남는다.
2003년, 이제는 평범한 사업가가 된 박두만이 우연히 17년 전 첫 살인 사건 현장을 찾았을 때, 한 소녀로부터 평범하게 생긴 남자가 그곳에서 옛날 자신이 했던 일을 회상하고 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영화 개봉 16년 5개월 만인 2019년 9월,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 이춘재가 검거됐다.
경찰은 현장 증거물을 보관하다가 2019년 7월 DNA 재감정을 의뢰했고, 당시 부산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이춘재의 DNA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춘재는 1994년 처제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었다. 33년 만에 찾아온 형사 앞에서 이춘재는 "살인 12+2, 강간 19, 미수 15"를 적으며 총 48건의 범행을 자백했다.
OCN과 채널 CGV에서 '살인의 추억'을 긴급 편성했으나, 피해자와 유가족을 위한 2차 가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IPTV VOD 서비스에서 영화 시청자가 255배 증가했다. 영화 속 박현규(박해일) 역시 실제 유력 용의자를 모델로 한 인물이었으나, 그는 강압수사 후유증으로 27세의 나이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2 불완전한 법, 그래도.
40대가 되면서 스릴러물이나 공포영화는 피하는 편이다. 볼 때는 재밌는데 보고 나서 잔상이 오래 남아서다. 순간의 재미를 위해 오랜 시간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갈수록 커진다. 그래서 파묘를 비롯해 흥행에 성공한 공포영화도 보지 않았다. 이 영화가 개봉됐을 때만 해도 별생각 없이 공포영화를 볼 때다. 한국에서 성공한 영화 중 대표 영화였던 살인의추억을 보지 않을 순 없었다. 몰입감이 대단했고 완성도가 말할 수 없이 높았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살인의추억을 인생영화로 꼽을 정도다. 영화에서 일어난 일이 실화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실제 범인이 잡혔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그는 검거 당시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고 전해진다. 프로파일러들과 악수를 하고, 농담까지 할 정도였다고. 이미 무기징역을 살고 있었던 그였기에 더 이상 나빠질 일이 없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나라의 법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열명 넘게 죽이고 48건의 범행을 저질러도 가장 강하게 내릴 수 있는 심판이 무기징역이라니. 아무리 감옥이라도 삼시 세끼는 다 나오지 않는가. 또 감옥도 사람 사는 곳이기에 적응되면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감옥에 가서 책을 많이 읽었다는 사람, 몸짱이 돼서 나왔다는 사람도 적잖음을 보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추측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정하는 기준은 절대 완벽할 수 없다. 법이 그렇다. 어떤 나라에서는 사형에 처해지는 범죄가 어떤 나라에서는 무기징역이 되기도 하고, 어떤 나라에서는 10년형에 처해지는 범죄가 또 다른 나라에서는 1년형이 되지 않는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죄였던 불륜이 이제는 무죄가 되는 경우만 봐도 사람이 정하는 법은 불완전하다. 그렇더라도, 죄를 지은 사람은 그 죄의 무게에 합당한 벌을 받았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이 동의하지는 못하더라도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일만한 기준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법이 공정하게 적용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