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친 '광' 스토리 텔링
조선 광해군 8년, 왕위를 둘러싼 권력 다툼과 붕당정치로 혼란이 극에 달한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광해(이병헌)는 매일 자신을 노리는 암살 위협에 시달린다. 수라상의 독 검사를 위해 수라간 나인들에게 음식을 먼저 먹게 하는 등 극도의 불안감 속에서 점점 난폭해져 간다. 결국 광해는 도승지 허균(류승룡)에게 자신을 대신할 대역을 찾으라 명한다.
허균은 기방에서 광해와 똑같이 생긴 하선(이병헌 1인 2역)이라는 광대를 발견한다. 하선은 왕의 말투와 행동을 완벽하게 흉내 내는 재주까지 가지고 있었다. 광해는 하선을 자신의 대역으로 활용하며 궁을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광해가 독이 든 음식을 먹고 의식을 잃게 된다. 허균은 궐내의 혼란을 막기 위해 하선에 광해의 자리를 대신하게 한다. 처음에는 돈에 이끌려 위험한 역할을 맡은 하선이었지만, 점차 백성들의 고통에 관심을 가지고 진정한 왕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하선은 궁녀들과 내관들에게도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며, 중전(한효주)의 마음도 서서히 얻게 된다. 그러나 도 부장(김인권)은 왕의 갑작스러운 성정 변화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한편 중전의 오빠인 유종호의 반란 혐의 사건을 통해 조정의 권력 다툼에 휘말리게 된다.
보름 만에 광해가 의식을 되찾으면서 하선은 다시 광대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진정한 왕의 모습을 보여준 하선의 이야기는 깊은 여운을 남긴다.
2 미친 '광' 연기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이 영화의 완성도를 한 단계 끌어올린 작품입니다.
이병헌은 광해군과 하선이라는 1인 2역을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광해군 역할에서는 자로 잰 듯 정제된 카리스마를 발산하고, 하선 역할에서는 꽉 조인 나사를 반쯤 푼 듯 가볍고 헐렁한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걸음걸이, 말투, 표정 등 섬세한 디테일로 두 인물을 명확히 구분했다.
류승룡은 무게감 있는 연기로 현명한 킹메이커 허균을 연기하며 이병헌과 완벽한 호흡을 보여줬다. 진중함과 코믹함을 오가는 연기로 극의 긴장감을 조절하는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장광은 전작의 악역 이미지를 상쇄시키는 선량하고 충직한 내시 역할을, 김인권은 특유의 희극적 이미지에 남성성을 겸비한 호위무사를 연기하며 작품에 깊이를 더했다.
모든 인물의 연기가 대단했지만 역시 그중에서도 이병헌의 연기는 일품이었다. 이 영화로 이병헌은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의 연기 실력을 인정받았다. 사생활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지만,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사생활 이야기가 쏙 들어갈 만큼 그의 실력은 출중하다. 그보다 키가 크고 잘생긴 배우들은 많지만 그만큼 연기를 잘하는 배우는 찾기 쉽지 않다. 말 그대로 실력으로 영화계를 평정한 그가 대단하다 느껴진다.
조선이라는 계급사회에서 가장 높은 왕의 삶을 살면서도 불안에 떠는 광해군. 그의 모습을 보며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이라고 해서 반드시 행복하지는 않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 부자가 됐으면서도 행복해 하지 않는 사람, 꿈에 그리던 여인과 결혼했으면서도 바람피우는 남편. 누구보다 유명하지만, 사실 누구보다 외로움을 느끼는 연예인. 결국 자신의 삶에 얼마나 만족하며 감사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3 왕의 대역은 가짜
광해군은 실존 인물이지만 영화와 실제 역사와는 차이가 있다. 먼저 영화의 핵심 설정인 '왕의 대역' 이야기는 말 그대로 가짜다.
둘째, 대동법과 관련된 묘사가 실제와 다르다. 영화에서는 하선이 대동법을 적극 추진하지만, 실제 광해군은 대동법 시행에 회의적이었고 오히려 두 차례나 폐지를 시도했다.
셋째, 명나라 파병 문제에서도 차이가 있다. 영화에서는 백성을 위해 파병을 거부했지만, 실제로는 강홍립을 보내 후금에 항복하게 하는 등 실리 외교를 펼쳤다.
넷째, 영화 속 하선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물은 가상의 캐릭터다. 실제 역사에서 하선이라는 인물은 천민이 아닌 선비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전 '왕자와 거지'를 떠오르게 만들면서도 그보다 더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 난폭한 이미지로 유명한 광해군의 이미지를 새롭게 볼 수 있는 재미. 볼거리도 많고 교훈도 있는, 광해는, 앞으로도 한국 영화 역사에 기억될 영화임이 분명하다.